
오늘 따라 밥이 질다.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말이 먼저 풀어진다.
진밥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밥알 사이에 엉겨 붙은 하루를 먼저 씹는다.
아내는 밥상보다 교회 문을
더 자주 연다.
밥솥의 김은 낮지만 신방과 선교의 이야기는 늘 위로 오른다.
우리 집 김치는 교회 자매들의 손을 빌려 담근다.
부엌보다 예배당이 가깝고
손맛보다 나눔의 시간이 먼저 익는다.
냉장고 안에는 집안의 역사보다
공동체의 체온이 쌓여 있다.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된장찌개
끓는 소리로 집의 안부를 배웠고
청국장 냄새로 계절이 돌아왔음을 알았다.
그러나 이 집에서 그런 맛을 기다리는 일은 비 오는 날 마른 불씨를 찾는
일과 같다.
밥상 위에는 바람에도 흩어질
듯한 김. 기름에 잠긴 붉은 햄.
그리고 김치국인지 김치찌개인지
자기 이름을 잃은 국. 그 국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초등학교 앞 양어장으로 돌아간다.
초록 물이 가득 차 있고 고기들은 쉼 없이 돌았지만 건져 올리면 늘 비린 물맛뿐이던 곳. 물은 넘쳤고 생명은 많았지만 맛은 자라지 않던 연못이다.
아내는 말한다.
“먹을 수 있음 감사해야지.”
그 말은 기도처럼 반듯하고 생활처럼 틀리지 않다.
다만 밥상 앞에 선 나는 혀보다
기억이 먼저 그 말을 삼킨다.
아내는 오늘도 남의 영혼을 덥히고
나는 오늘도 식어가는 밥을 천천히 먹는다.
아내는 천국을 준비하고
나는 내일의 된장찌개를 상상한다.
서로 다른 길에 서 있어도
우리는 매일 이 식탁 앞에서 만난다.
질어도 밥은 한 끼를 건너게 하지
않고 싱거운 국도 속을 비워두지는 않는다.
투덜거리며 먹는 이 밥상에
숟가락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는
사랑이 아직 김처럼 조심스레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밥은 질었고 말은 무뎠지만
식탁 위에는 여전히 부부라는 이름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다.
2011년 건택 다이어리에서..
설명절이 다가왔습니다.
오늘도 멋진 하루 되세요.
마음은 분주해도 잠깐 숨 고르는 여유만은 놓치지 않는 하루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