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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라는 거울 앞에서

kentaek 2026. 2. 25. 21:29

명절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냄비보다 먼저
마음이 끓는다.

평소에는 배달앱이 밥을 짓고
카드 영수증이 반찬값을 대신하지만,
명절이 오면 ‘정성’이라는 두 글자가
무거운 놋그릇처럼 식탁 한가운데 놓인다.

기름은 튀고
손목은 시큰거리며
입에서는 한숨이 김처럼 오른다.
“왜 늘 이렇게 힘들까.”
그 푸념은 부엌 천장에 맺혔다가
다시 마음으로 떨어진다.

사치는 꼭 비단옷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간을 아끼지 않는 마음의 사치, 서로의 수고를 외면하는 태도의 사치도 있다.

게으름 또한 이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먼저 접어버리는 것이
어쩌면 더 깊은 게으름일지 모른다.
그러나 거울은 한쪽 얼굴만 비추지 않는다.
남편은 얼마나 국자를 들었는가.
말로만 “고생 많다” 하지 않았는가.
명절 증후군은 여자만의 것도, 남자만의 것도 아닌 서로의 기대가 엇갈려 만든 그림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집 부엌에서는
여전히 웃음이 먼저 익는다.
전 부치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잔잔하고 된장국 끓는 냄새가
고향의 저녁노을처럼 번진다.

모전여전이라는 말이 있다.
어머니의 등을 보면 딸의 걸음이 보이고 어머니의 손을 보면 딸의 밥상이 보인다고 했다.

어머니의 손맛은 세월을 건너
딸의 손끝에 내려앉고, 모성의 온기는 불씨가 되어 다음 세대의 아궁이를 지핀다.

그 맥을 잇는 고장, 전라도의 여인들.
사치로 치장하지 않고 게으름에 기대지 않으며 정성으로 한 상을 빚어내는 사람들.

명절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동서 간의 우애를 반찬처럼 나누며
말 한마디에도 온기를 얹는 참으로 넉넉한 마음들.

설 연휴가 지났습니다.
수고하신 부엌댁 여러분,
차린 밥상마다 복이 소복이 쌓이고
웃음마다 햇살이 깃들기를. 당신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온기가 올 한 해
집안 가득 향기처럼 머물기를 빕니다.


설 명절을 보내며...
2020년 1월 30일. 글쓴이 서 건택.
이글은 2020년,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월간 우수사연상
이라는 이름으로 제 작은 이야기가 전파를 탔습니다.